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을 본격화하면서, 각국의 에너지 정책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 중심적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유럽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에너지 전환 목표 수립, 정책 실행에 있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면서도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어 비교 분석의 가치가 큽니다. 본 글에서는 한국과 유럽의 에너지 정책을 ‘보조금 정책’, ‘에너지 목표’, ‘정책 실천’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준을 중심으로 상세히 비교해봅니다.
목차
1. 보조금 정책: 정부의 재정지원 전략 비교
재생에너지 확대는 초기 투자비용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과 유럽은 모두 보조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그 구조와 목적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한국의 보조금 정책은 중앙정부 주도의 집중지원 방식이 특징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은 주택용, 건물용, 산업용 태양광 및 지열 설비 설치 시 설치비의 최대 50%까지 지원합니다. 여기에 지자체별 추가 보조금, 세액 공제, 탄소포인트 제도 등도 운영되어 다층적 지원 체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린홈 100만호 프로젝트’를 통해 일반 가정에도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보조금 정책은 보다 분권화되고 다양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REPowerEU’, ‘Green Deal’ 등의 거대 예산 프로젝트를 통해 회원국 전체에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개별 국가는 이를 자율적으로 적용합니다. 독일의 경우 ‘에너지 전환법(EEG)’을 통해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으며, 프랑스는 ‘에너지 절약 인증제도(CEE)’를 통해 설비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또한 유럽은 시민 에너지 협동조합, 지역 전력회사 등을 통한 ‘자발적 참여 기반’ 보조금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별화됩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중앙정부가 일괄 설계한 틀 속에서 실행력을 강화하는 반면, 유럽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보조금 활용 모델이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2. 에너지 목표: 국가별 에너지전환 로드맵
정책 목표는 각국의 에너지 전략 방향을 결정짓는 나침반입니다. 한국과 유럽 모두 2050 탄소중립을 기본 골자로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 목표와 세부 이행 전략은 상이합니다.
한국의 에너지 목표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2018년 대비)
- 재생에너지 비중 30.6% 달성
- 석탄화력 발전 비중 21.2% → 14.4%로 감축
- 수소·해상풍력 등 미래 에너지 기술 투자 확대
유럽연합의 에너지 목표는 ‘유럽 그린딜’과 ‘Fit for 55’ 정책을 통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 2030년까지 온실가스 55% 감축(EU 전체 평균)
-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42.5% 이상
- 에너지 효율 36% 개선
- 2050년 탄소중립 및 100% 재생에너지 전환
특히 유럽은 국가별 목표를 분담한 뒤, 연간 감축 경로와 정책 수단을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석탄 발전 중단 기한을 2038년에서 앞당겨 2030년까지로 목표를 재설정했고, 덴마크는 2030년까지 풍력 에너지로 국가 전력 수요의 100%를 충당할 계획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발전 부문 중심의 계획이 많고, 산업·수송·건물 부문별 통합 전략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입니다. 반면 유럽은 분야별 세분화된 감축 목표와 이행 방식이 명확히 존재하며, 이를 통해 정책의 투명성과 실행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3. 정책 실천: 제도화와 시민참여 방식
에너지 정책의 성패는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시민 참여와 제도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책 실천 방식은 주로 법제화된 계획 하에 민간 주도, 정부 감시·지원 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전기사업법',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법' 등을 통해 정책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한국에너지공단, 전력거래소, 산업부 등이 이행을 점검합니다. 하지만 시민 참여 방식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일부 지역에서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 ‘에너지 협동조합’ 등의 실험이 진행 중이지만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고, 주민 수익 모델도 제한적입니다.
유럽의 실천 전략은 시민 중심, 지방정부 중심, 자율분산형 실행이 특징입니다. ‘시민에너지’라는 개념이 존재하며, 주민들이 발전소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며, 수익을 나누는 구조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 중 40% 이상이 개인 또는 협동조합 소유입니다. 지방정부의 역할도 매우 큽니다. 스웨덴, 핀란드 등은 도시 단위에서 자체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EU는 이를 위해 ‘에너지 시민 플랫폼’을 운영하며 정보, 자금, 기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럽은 에너지 정책을 단순한 중앙정부 주도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시민형 인프라 시스템’으로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크게 다릅니다.
4. 결론: 정책 차이 속 협력의 기회
한국과 유럽의 에너지 정책은 제도 설계, 실행 전략, 참여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동일합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중립 실현, 에너지 자립 기반 강화는 모두의 공통 과제입니다. 한국은 유럽의 시민참여형 에너지 모델, 분권형 정책 추진, 지역 기반 에너지 시스템 설계 방식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반면 유럽은 한국의 빠른 기술 상용화, 국가 차원의 집중적 보급 전략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양측은 기술 교류, 정책 협력, 국제 공동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상호 보완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며, 특히 수소, 해상풍력,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협력 여지가 매우 큽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대전환입니다. 그 과정에서 정책의 질적 수준과 실행력, 그리고 시민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국과 유럽의 비교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